박사

박사가 되었다.

딱히 그렇게 느낌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뭔가 더 많이 자유로워진 느낌. 디펜스를 삼월 말에 마치고 이번 달 중순 쯤 졸업 논문 최종본을 제출했다. 학교에서 졸업장에 이렇게 찍힐 거다 하고 뭐라고 보내줬는데 닥터 오브 필로소피 이렇게 써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졸업을 하긴 했구나. 어차피 같은 연구실에서 계속 일하고 있고 졸업 논문 내기 전 해왔던 일을 계속 하고 있으니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넌 더 이상 학생이 아니야, 이렇게 주지하고 있다. 즉, 아카데미아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교수-학생 간 주종관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도 된다는 거고 (우리 교수는 다른 교수들에 비하면 천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물론 좀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의미.

아카데미아를 떠나기로 마음 먹고, 이전부터 관심 있었던 데이터 사이언스 쪽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는 게 좋다고 생각돼 일단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친구랑 같이 머신 러닝을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졸업을 했다고 해도 막상 그렇게 널럴하지가 않다. 하지만 날씨도 점점 풀리고 일단 정신적으로 졸업 전처럼 그렇게 심한 압박감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은 참 편하다. 새롭게 배우는 것들도 그래서 그런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게 된다.

지난 주에는 게이브를 보러 오스틴에 갔었다. 며칠밖에 안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수가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는 자기 밑에서 일해도 좋다고 했는데, 어차피 논문만 쓰는 거라면 (실험을 더 할 필요도 없으니) 굳이 연구실에 나갈 필요도 없다. 그럼 굳이 뉴욕에 있지 않아도 원격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내가 과연 뉴욕에 왜 있어야 할까. 이제 날씨가 좋아지고 하니 뉴욕에 사는 맛이 좀 나겠지만, 내가 과연 여기서 얻는 게 많을까 잃는 게 많을까 생각해 봤다.

뉴욕에 있으면 제일 좋은 점은 사실 뭐 도시를 즐기고 이런 걸 떠나서 구직하기가 더 편하다는 것 – 아무래도 네트워킹하기가 더 쉬우니까. 오스틴에 있으면 좋은 점은… 사실 더 많다 – 장거리 연애를 끝내 접을 수 있고, 돈도 많이 아낄 수 있고. 차를 사지는 않을 테고, 아무래도 구직을 오스틴에 집중해서 해야 할 테니 이런 점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자전거를 타면 되고 아니면 집카Zipcar이런 걸 이용하면 되고, 그리고 잡 구할 때까지는 일단 앞으로 한 반 년 정도까지는 교수 연구실에 소속돼 있을 수 있으니 거취를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 의외로 쉽게 결정을 내렸다. 오스틴으로 가기로. 오스틴에 하도 자주 가서, 이사를 가더라도 아마 그전부터 쭉 살아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 지금 생각으로는 유월 말 즈음을 생각 중이다. 그 정도는 뉴욕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랑 작별 인사할 시간도 충분할 테고, 또 같이 공부하는 친구랑 스터디 마무리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일단 오스틴으로 돌아가면 여러 모로 삶의 질이 향상될 텐데, 이 생각을 하니 즐겁다. 그리고 또 박사 과정이라는 삶의 한 장을 접고 다른 장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 뭔가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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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의미있는 것

거의 일 년 넘게 해왔던 고민이지만 이제 졸업예정일이 대강 정해지고 나니 박사 과정을 마치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매일처럼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계에 남느냐 아니면 떠나느냐의 이분법적 사고를 했었다. 학계마다 이렇게 굳이 경계를 확실히 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가 있겠지만 일단은 어떤 것이 주가 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 졸업이 내년 봄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

연구가 잘 되는 날이면 학계에 남아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지만, 이런 날이 매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자고 회사에 가서 일을 하자니, 연구와는 달리, 고객을 위해 일하고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것이 참 낯설게 느껴질 것 같고 – 물론 금방 또 적응하겠지만, 그리고 기업마다 환경도 조금씩 달라서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이런 고민을 별로 하지 않을 경우도 많을 테고.

그러다가 최근에는 나름대로 세 가지 척도를 정해봤다. 이중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두 가지는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내가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걸 잘 못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 열등 의식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쉽게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자고 잘하는 것을 살리되,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 돈은 (운이 좋으면) 쉽게 벌 수야 있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고.

최근에 한 가지 더 추가한 마지막 척도는 바로, 의미있는 것. 이것은 단순하게,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내가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데, 이왕이면 그 영향이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좀더 나아가, 내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욕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누구 말처럼 그냥 차라리 돈을 왕창 벌어서 기부를 하는 게 더 나은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돈 욕심은 없으니 이건 또 동기부여 측면에서 잘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든 남을 돕는 것이든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든 그런 관련된 일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사실 미래를 생각하면, 포닥이든 아니면 일반 직장을 구하는 일이든, 막연히 생각할수록 좀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근 오년 동안 박사 과정이라는 길을 쭉 걸어오다가 이제 다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어차피 이전 내 삶에서 이리저리 인생의 경로가 바뀐 때도 많았으니,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다른 기회가 있으면 또 다른 길로 방향을 틀 수도 있을 테니, 결정은 신중히 하되 여기에 너무 지나친 무게는 두지 말자고 생각하려 한다.

웬만하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의미있는 것, 이 세 가지 다 만족시키는 직업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이상적인 경우는 별로 없겠지. 하지만 세상은 넓고 여기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니, 뭐 하나라도 재미난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련다. 이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공부를 하든 뭘 하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들뜨고 신이 난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남겨진 사람들

차별받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다. 하나는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것, 하나는 현존하는 시스템 내에서 적응하는 것.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 사는 게이들을 보면, 게이들이 많은 업계에 종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혼자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취직했을 때 게이라는 게 밝혀지면 알게 모르게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이 차별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차별받는 소수는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때, 자기의 소수 정체성이 가장 쉽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어쩐지, OO라더니.” 이런 식으로.

여기서 자유로워지고 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특히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 이게 상당히 많이 해결된다. 사실 돈뿐만도 아니다. 공부를 잘하거나 성과가 좋거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잣대로 ‘성공’하면 누가 날 차별받는 소수라고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 – 적어도 겉으로는.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잘나야 한다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통용되는 진리는, 차별받는 소수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도 알게 모르게, 내가 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바른 사람이 되어야, 게이로 남들한테 손가락질 당하는 일이 없겠지,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심지어 몇몇 소수 인권 단체들에서조차 대변인을 지명할 때도 정치적으로 ‘잘 팔릴 것 같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하루는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이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이 시스템에 적응해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아간다고 치자. 내가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사회의 질서에 열심히 순응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공하지 못한, 별 볼일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소수는 그럼 무시당해도 좋은 걸까? 대답은 물론 ‘아니오’다. 그리고 정답은 한 개인이 성별, 종교, 인종, 성적 지향 등에 관계없이 존중받을 수 있게 현 사회가 성숙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답이 우리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니까, 나 자신이 이 괴물같은 시스템 앞에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니까,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일단 나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생각해 왔고.

대부분의 차별받는 소수는 차별당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별받을 것 같은 측면을 숨기거나 (종교, 성적 지향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에는 (인종, 성별 등) 억울하지만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포기해버린다. 그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성공을 통한 신분상승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수 집단 내 개인의 성공이 꼭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혹시라도 이런 식으로 차별의 시선을 (표면적으로나마) 벗어나게 되었다면 한번 쯤 뒤를 돌아보고 내가 머무르던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헤아려 봐야 한다 생각한다.

가을

지난 한 주, 매일 교수와 미팅하면서 논문을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했다. 이 정도면 생각이 고갈될 쯤 되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생각은 또 잡초처럼 무럭무럭 자라더라. 그럼 또 우리는 쓸데없는 걸 뽑아주고,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이런저런 생각이 무성하게 돋아 있다. 이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는 하는 것 같다. 매일 이런 과정을 반복한 탓인지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뇌가 다 닳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한 달 전 문을 연, 집에서 딱 한 블럭 떨어진 커피숍에 책을 잔뜩 가져가서 읽었다. 토요일 하루는 열심히 일한 스스로에게 상을 주자고 했다. (아직도 읽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몇 챕터 읽었고, 한국에 있을 때 동생 집에서 발견한 단편집에서 도로시 파커의 ‘The Standard of Living’을 읽었다. 장편 소설을 읽다가 단편을 하나 읽으니 방금 만든 겉절이 김치 한 조각 먹는 것 같은 상큼한 느낌이 들었다. 황금같은 토요일 오전에 소설만 읽는 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구실에 있었던 포닥 로날드가 알려준 비트겐슈타인 전기도 읽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 게이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 온 지 이제 일 년이 넘었는데, 이곳에 막 살기 시작한 지난 해 가을을 생각해 보면 그땐 정말 좀 우울했었다고. 솔직히 연구실 사람들 말고 그렇게 친구를 많이 사귄 것도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여기 적응했고, 나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룸메이트 션은 지금이 일 년 중 가장 자기가 좋아하는 때라고 했다. 날씨도 적당하니 돌아다니기도 좋고 도시에서 가을 정취가 물씬 나니까. 교수는 내년 봄에 졸업하는 걸로 계획을 잡아보자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아마 올해가 뉴욕에서의 마지막 가을이 되겠지. 이곳을 떠나면 아마 다시 뉴욕에 살게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 특히 그때까지 내가 게이브와 함께라면.

오늘은 일요일. 늦잠을 자다가 아침 시간을 놓치는 게 싫어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다시 커피를 마시러 이곳에 왔다. 건물 밖을 나서니 오늘도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낙엽으로 노랗게 물든 거리가 나를 반긴다. 커피숍 내부는 도란도란 사람들의 대화 소리, 그윽한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으로 포근하다. 안으로 직접 해가 들지는 않아도 맞은 편 건물에 반사된 햇살이 내부를 밝히고 있다. 구름 때문에 서서히 밝아졌다가 잠시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네. 가을 아침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

내일 갔다 온 얘기 해 줄게!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 되는 친한 누나를 만났을 때였다. 누나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들려주고 싶은 것을 신이 난 듯 계속 말했다. 이 세상에 갓 나온 아이에게 내가 사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어릴 때 엄마랑 아빠가 바쁘고 각박한 그네들 맞벌이 와중에도 나랑 동생을 데리고 공원이든 동물원이든 시장이든 어디든 데리고 다니려고 했던 게 생각난다.

이러한 간접 경험과 지식의 전수는 당분간은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아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혼자 생각하고 주변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조금은 덜 일방적이 된다. 부모도 자녀의 경험을 통해 깨닫고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게 있을 테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을 살게 되면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단위 시간 당 우리가 습득하는 경험의 양은 젊었을 때에 비교해 줄어들지 않나 싶다.

나와 엄마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쩌면 그 차이가 더 큰지도. 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어느 측면에서는 비주류의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까. 나는 계속 내 삶을 탐험 중인데 엄마는 이제 사뭇 단조로운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내가 사는 삶은 엄마에게는 너무나도 먼 나라 일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때도 종종 있고. 그래도 부모가 좋은 걸 보고 듣고 맛있는 걸 먹고 그럴 때 자식과 함께 나누고 싶듯, 나도 좋은 곳에 가거나 좋은 경험을 하면 엄마도 여기 있으면 참 좋아하실 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효도라고 하는 것을 부모님에 대한 공경이라기보다는 부모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해 왔다. 돈 욕심도 별로 없다보니, 부모님에게 뭘 대단한 걸 해드릴 수도 없고, 잠깐이야 좋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 중 좋았던 것을 그들과 나누는 것이 내 나름의 효도라고, 내 나름의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엄마가 용돈으로 쓰라고 돈을 내 방 책상 위에 놓아두셨더라. 이전에는 한국에서는 부모님 돈을 주로 썼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그 돈을 그냥 고스란히 뒀다. 학부 때 들었던 미술사 수업에서 알게 돼 수유+너머를 통해 지금도 연락하는, 채운 선생님이 경복궁 역 근처에 ‘규문’이라는 연구 공간을 열고 강의도 하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선생님의 미술사 강의 하나가 곧 열린다는 이야기도 접했다. 엄마한테 팜플렛을 보여드렸더니 재미있겠구나, 하시면서도 강의 시간도 평일 저녁인데 거기까지 언제 갔다 언제 오냐, 이런 식으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셨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엄마 이름으로 강의료를 입금했다. 돈을 냈다고 하면 분명히 돈 아깝다면서 가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히히. 채운 선생님께도 엄마가 강의 가실 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 니가 가기 전에 효도를 해보겠다 이거지? 자리가 없어도 만들어 드려야지! 대환영이라 전해드려라!
공항에서 엄마한테, 이거 입금했고 환불도 안 되니까 가서 무조건 들어셔야 한다고 했더니, 엄마는 처음에 시키지도 않은 짓을 공연히 한다고 막 나무라셨다. 그러면서도 (역시 예상했던 대로)
– 돈 냈으니 가서 들어야지 어쩌겠어.

몇 주 전에 첫 강의가 시작했는데, 엄마 반응이 어땠는지 정말 궁금했다. 내가 먼저 연락할 필요도 없이 강의 끝나고 집에 도착한 엄마한테 먼저 문자가 왔다. 파울 클레Paul Klee라는 미술가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그림이 엄마 취향이다,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강의가 재미있고 안 어려웠다, 엄마가 제일 노땅이다, 강의하는 사람들 중 별의별 일을 하는 사람이 다 모여 있더라, 이러면서 계속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직접 인터넷에서 파울 클레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관련된 책이 있으면 읽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엊그제 강의 가기 전날, 엄마는 나한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 내일 갔다 온 얘기 해 줄게!

펜팔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 A랑 가끔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실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서 이 친구가 일할 거나 잘 때 내가 문자를 보내고, 내가 출근하거나 잠자리에 들 무렵에 이 아이에게 문자가 온다. 지금 자고 있겠지, 지금 바쁘게 일하고 있겠지, 지금 뭐하고 있을려나, 보통 이런 식으로 문자가 시작한다. 이렇게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까 마치 펜팔하는 느낌이다. 얼굴 보는 것도 내가 한국에 가야 한번 보는 게 그만이니까.

우리는 대학 때 만나서 친해졌는데 그래서 우정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나에게 참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다. 우리 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책을, 어두운 세상에 비치는 한 줄기 빛으로 여기는 것 같다.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사람다운 삶으로 이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우리 둘다 지난 이 년 동안 책을 이전처럼 그렇게 열심히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반성했다.

친구는 어제 일 마치고 돌아와, 몸살 난 남편을 재우고 늦은 밤 거실에 나와 한숨 돌리며 책을 읽으려 하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 무겁지만은 않은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거실 가운데에 있는 책상에 앉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읽기 시작한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지하철 타고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책에 대해 친구에게 말했더니, 본인도 조금 찾아보았는지, 정말 궁금하다면서 당장 주말에 도서관에 가야겠다고 했다.

친구는 곧 과 행사가 있다면서 행사에 오는 중요한 사람들 이름을 외워야 한다는 명을 받았다고 했다. 씁쓸하게 웃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거의 십 년 전이 되어버린 검찰청 공익 시절, 검찰청 간부들의 이름과 얼굴, 심지어 차 번호를 못 외우면 벌을 받아야 했던 그때가 떠올라서 나도 씁쓸하게 웃었다. 친구는 아마 지금쯤 행사에 참여하면서 생전 처음보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있을려나.

“힘내 친구야, 내가 바다 건너에서 너를 위로하고 있으니.”

친구가 보고 싶다.

당신은 무슨 조인가요?

나는 자유로운 영혼, 내림라장조.

얼마 전 오랜만에 사운드클라우드에 들어갔다가 정말 재미있는 라디오 시리즈를 하나 발견했다. “The Signature Series”라는, 캐나다 라디오 방송인 Paolo Pietropaolo이 제작한 쇼. 영어로 key signature는 우리나라의 조표를 뜻한다. 조표는 서양 음악 악보에서 음자리표 옆에 붙는 샵이나 플랫을 말한다. 이 시리즈는, 처음 에피소드인 사단조를 시작으로, 스물네 개의 조를 마치 별자리 설명하듯, 각각의 조를 특정 성격을 소유한 사람으로 형상화해 설명한다. 예컨대 내림라장조는 자유로운 영혼, 내림마장조는 프린스 차밍, 라단조는 아이스 퀸, 올림바단조는 은둔자.

스물네 개 거의 다 들어봤는데 하나하나 다 흥미롭다. 각 에피소드마다 그 조로 쓰여진 음악을 열 몇 개 정도 잘 섞어서 틀어주고 그 인물의 성격을 사이사이 설명한다. 아무래도 잘 알려진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데, 아 이 곡이 이 조로 쓰여진 것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예컨대 내가 좋아하는 드뷔시의 ‘월광’이나 드보르작 교향곡 9번 2악장이 내림라장조라는 것도 이번에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물론 곡 중간에 조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곡 중간에 잘 알려진 부분만 따 온 것이니 한계는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정말 재미있게 들을 거라 생각한다 – 라장조를 항상 긍정적인 부동사업자로 묘사하는 부분에서 빵 터짐.

클래식 음악 듣는 걸 즐기는 편인데도 생각해 보면 어떤 곡이 어떤 조로 쓰여졌는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 같지는 않다. 장조인가 단조인가 정도만 따졌을 정도 – 이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으니까. 장조는 당연히 용감하고, 진취적이고, 희망에 가득차 있고, 평화롭다. 단조는 극적이고, 종종 슬프고, 어둡고, 때로는 분노에 가득 차 있고, 아니면 차갑고, 어떤 때에는 오히려 장조보다 더 맹렬하고 열정적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여기에 각각의 조마다 성격을 부여해 어떤 남자 또는 여자, 이런 식으로 빗대어 설명한 것.

음악이나 화성을 따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로 조를 바꿔서 연주한 걸 떠올려 보면, 조를 바꿔 연주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조를 바꾼다고 특정 음을 연주하는 데 제한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각 조가 갖고 있을 법한 특정한 성격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로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조가 바뀌면 음계가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조라고 해 봐야 주파수가 다른 것뿐이니까. 그런데 작곡가들이 음악을 만들 때 특정한 조를 선택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 다장조로 만들 수 있었는데 굳이 가장조를 선택했다면 그 이유는 뭘까?

좀 찾아보니 흥미롭게도 사람들이 특정 조에 대한 감상을 표현한 적이 있더라. 구스타프 쉴링이라는 19세기 독일 음악학자는 내림라장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The pure chord of D-flat major has only to ring out, and the sensitive soul will see itself, as it were, surrounded by pure luminous spiritual creatures, which perceive it in a shape or apprehend it in a form to which the soul, by virtue of its momentary mood, is attracted most of all.”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들어 본 결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니면 나랑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한, 아니면 내가 희망하는 이미지를 가진 조는 내림라장조. 여성으로 묘사하기는 했어도, 성격 상으로는 나랑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제일 많이 만났다. 이 에피소드에 따르면 내림라장조는 시를 좋아하며 세상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사회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에 괘념치 않되 냉소적이지 않으며,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상상력 풍부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가 지는 풍경에 벅찬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사람. 그런 자유로운 영혼.

“Perhaps you’ll run into her one evening, sitting on a bench, lost in thought. You’ll catch a glimpse of her secretive half-smile. Your heart will skip a beat. You may think she’s smiling for you. But the truth is… you’ll never really know.”